이규열(37세), 5 남매의 아빠, 아내가 떠난 홀아비. 그는 신문을 돌리면서도 뛴다. 7년 동안 새벽 세 시면 일어나 신문을 돌리지만 그의 한 달 급여는 기껏 19만원이다. 그래도 떠나지 못한다. 시각 장애인을 써주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돈만큼 아까운 것이 시간이기에 다들 잠든 새벽에 그는 뛴다. 그 바쁜 와중에도 아파트 호수 글자 앞에 매번 눈을 들이밀어야 한다. 아무리 가까이 눈을 대봐도 잘 보이지 않는다. 눈동자가 흔들리는 안구진탕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달사고도 잦다. 이러다가는 이 일조차 잘릴까봐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빗속을 달리다가도 집에 전화한다. 아이들의 등교시간을 챙기는 것이다. 좀 일찍 나온 새벽이면 기다릴 아이들을 떠올리며 그 침침한 눈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달린다. 서둘러 달려온 집에서 막내는 구멍난 운동화를 내민다. 당장 사주는 대신 못 알아듣는 척하며 양말 하나 더 챙기라는 말로 무너지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중학교 중퇴 후, 일용직을 전전하며 5남매를 키웠다. 이 아이들을 남기고 7년 전 집 나간 아내를 그는 미워하지 않는다. 자기가 다 잘못해서 떠났다고 미안하단다. 그게 말처럼 쉬울까. 누구나 힘들면 남을 탓하고 원망하기 일쑤인데 달라도 한참 다르다. 그런 그이기에 오늘도 그 흐린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며 웃는다. 그가 겪었던 지독한 가난과 부정에 대한 한을 사랑으로 아이들에게 푼다. 흔들리는 눈동자 때문일까. 난 그의 얼굴을 보면, 흔들려서 더 빛나는 그 눈동자 때문에 마음이 아린다. 그런데 그리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아이들이 등교 전 30분 동안 아빠를 도와 신문을 돌리는 날이 있다.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아빠와 함께한 날은 기분이 뿌듯하단다. 그 아이들 때문에 규열씨는 오늘도 새벽 빗속을 달린다.
그렇게 바쁘게 뛰는 하루 중에 수없이 걸려오는 빚독촉 전화는 그를 가만두지 않는다. 기술 없이 시작한 중국집에 전 재산을 날리지 않았더라면, 어머니께 의치를 해드린다며 빚을 더 늘리지 않았더라면 좋았겠다. 그의 고단한 일상에 빚독촉은 지독한 소금기이다. 그래도 두 살 때 엄마가 떠난, 초등학생 막내 재민에게 그는 아직도 "까꿍"과 "뽀뽀"로 얼굴을 들이밀며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해줄 것은 더 많아지는데, 다 해주고 싶었는데 그 꿈이 그에게서 점점 멀어진다.
17만원 방세는 석 달 째 밀렸고, 먹성 좋은 아이들은 빈 쌀독 바닥을 긁어댄다. 빈 쌀독을 옆에 두고 규열씨는 라면으로 한 끼를 때운다. 재민이 안경이 제일 급한데, 셋째의 학교 준비물인 찰흙도 사야 하는데, 아빠는 차마 돈이 없다는 말은 못한다. 이 대목쯤 와서는 그를 지켜보는게 고통이었다. 만약 내 강아지가 아픈데 병원에 데려갈 돈이 없다는 생각만 해도 그 가슴을 짐작할터인데 그의 고통은 오죽하겠나. 죽어도 안 떨어지는 입으로 간신히 가불을 하고, 외상 쌀로 쌀독을 채우고, 집주인에게 빌며 월세를 연기하자마자 또 걸려온 빚 독촉 전화에는 그도 숨이 막혀 주저앉는다.
나약한 나는 그 정도면 죽었을 것 같다. 아이들의 존재를 잊으려 세상이 온통 흔들리도록 술을 마셔도 그리 큰 죄가 아닐것이다. 그런데 그는 다르다. 아이들을 혼내고 나서 "네가 미운게 아냐. 게임 많이 하면 네 눈이 점점 나빠 져서 그래. 널 사랑해. 알지?" 하며 혼 낸 아이를 끌어 안는다. 비록 밥 대신 라면을 먹는 날이 많아도 아이들은 그 사랑으로 맑은 웃음을 잃지 않고 한 뼘씩 자란다.
여기저기 내민 얼굴 이력서 덕에 간신히 일자리 하나를 더 구했다. 세 시간 파트타임으로 일하게 된 중국집에서 하루종일 양파를 까느라 그렇지 않아도 아픈 눈에 눈물이 맺힌다. 그런데 아이들 앞으로 돌아온 그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해맑게 웃는다. 벼르다, 미루다 1년 만에 막내에게 안경을 해 주는 날, 최고 기쁜날이라며 활짝 웃는 규열씨네. 그 쪼들린 살림에도 촛불이 켜진 케이크로 생일을 축하하며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 준다. 그러고도 주는 사랑이 너무 작다며 또 뒤돌아 운다. 그렇게 울다 잠든 다음 날 새벽, 그는 잠든 5 남매의 이불을 챙겨주고는 또 새벽을 향해 세상으로 뛰어나간다. 수퍼맨 아빠는 그렇게 혼자서 날마나 새벽을 연다.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라는 오늘을 그는 실감나게 또 달린다.
그런 그를 보며 내 가슴도 그의 발걸음 소리만큼 둔탁하게 뛴다. 이제 곧 그의 주소를 알아내어 매달 얼마의 후원금을 보내겠지. 그리고는 내가 세상에 돌려준 작은 위안으로 아무렇지 않게 당당하게 살려나. 아니, 나는 그를 보며 내 나약함이 부끄러워 우선 그 앞에 속죄하고 싶었다. 내가 가진 사회적 이름이나, 물질적인 누림이 아니고도 내가 가진 사치스러운 마음이 죄스러웠다.
당연히 세상엔 규열씨 만큼, 아니 그보다 더 힘든 이들이 또 많이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토록 악착같이 그 처절함을 극복해 내고 있건만, 가방 줄 조금 더 길고, 세상의 자잘한 것들을 조금 더 가졌다는 나는 오늘도 그의 천분의 일도 안되는 일에 낙담하고, 아이들의 소리죽인 요청보다 훨씬 작은 요구들에 화를 내고, 내 탓이 아닌 것들이 내게 돌아옴에 흥분하고 변명하고든, 감히 세상이 힘들다고 내 입으로 말했었다. 이런 내모습은, 속죄를 비는 것은 당연하여도 용서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교만이다.
그 장애에도 빛나는 눈을 가질 수 있는데, 기껏 나는 사십 중반에 온 노안에 우울해하며 흰 머리를 감추려고 염색하는 데 귀한 시간을 할애한다. 내가 그보다 무엇이 나아거 이만큼을 더 누리고 있나. 어찌 계산해야 그것이 당연할 수 있을까. 아무리 여러 번 계산해봐도 내 계산법으로는 절대 답이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세상이 내게 원하는 것은 어렵게 계산하여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규열 씨를 보며 조금을 닮아 보라고, 그저 흉내라도 좋으니 오늘 하루 조금 더 자신을 낮추어 감사해 보라는 것 같다.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 나니 내가 지금 가진것들은 분에 넘치게 충분하다.
-멀리가려면 함께가라, 이종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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