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캐나다 이민자 아줌마의 이민 육아 이야기
캐나다 현지 이민 법률 회사 3년 경력 아줌마의 캐나다 이민, 생활, 육아, 힐링 관련 정보 공유 블로그.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들 (40)
유시민, 어떻게 살것인가, 품격있게 나이를 먹는 비결


나는 멋있는 노인이 되고 싶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나이를 품격있게 먹을 수 있는지 자주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나는 아직 너무 젊다. 표현을 자칫 잘못하면 어른들에게 결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내 생각을 말하는 대신 연세가 많이 든 분이 쓴 글을 인용한다. 젊은 시절 칼럼니스트로 이름을 떨쳤던 홍사중 선생은 아름답게 나이를 먹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일흔 여덟에 쓴 수필집에서 그는 밉게 늙는 사람들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했다. 


1. 평소 잘난체, 있는 체, 아는 체를 하며 거드름 부리기를 잘한돠.

2. 없는 체 한다.

3. 우는 소리, 넑두리를 잘한다.

4. 마음이 옹졸하여 너그럽지 못하고 쉽게 화를낸다.

5.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한다.

6. 남의 말을 안 듣고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사실 노인만 그런게 아니다. 젊은 사람도 그럴 수 있다. 나는 훨씬 젊었을 때도 이런 "밉상짓"을 좀 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면이 남아 있을 것이다. 이런 태도는 늙어서 새로 생기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원래부터 있다. 홍사중 선생이 예시한" 밉상짓 목록"은 젊은이 들에게도 자기의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이 된다. 만약 다음과 같이 정반대로만 한다면 노인이든 청년이든 똑같이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 


1. 잘난체, 있는체, 아는체 하지 않고 겸손하게 처신한다.

2. 없어도 없는 티를 내진 않는다.

3. 힘든 일이 있어도 의연하게 대처한다.

4. 매사에 넓은 마음으로 너그럽게 임하며 웬만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는다. 

5.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신중하게 행동한다.

6. 내 이야기를 늘어놓기 보다는 남의 말을 경청한다.


이렇게 하면 품위 있는 어른으로 존중받을 수 있다. 아름답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곧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품위 있게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품위있게 인생을 사는 것이다. 젊어서나 늙어서나 품위 있게 사는게 가장 바람직 하다. 젊을 때 품격 없이 살았더라도 나이가 들면서 품위를 갖추면 차선이다. 젊어서나 늙어서나 품격 없이 사는 것은 아주 좋지 않다. 그러나 최악은 젊을 때 품격이 있었던 사람이 늙어서 밉상이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젊어서도 품격이 없었던 사람보다 훨씬 격렬한 비난을 받는다. 젊었을 때 훌륭하다고 평가를 받는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나는 이것이 공정한 처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젊었을 때와 달라졌다고 해서 다 변절인 것은 아니다. 정체성이 달라지면 말과 행동이 바뀌는게 당연하다. 

나이를 먹는데도 롤모델이 필요하다. 내 노년기 롤모델은 2010년 작고하신 언론인 리영희 선생이다. 1970년대에 청년기를 보냈던 "유신세대" 지식인들 중에는 리영희 선생을 "사상의 은사"로 존경하는 사람이 많다. 그는 자유의 고귀함을, 진실과 지성의 위대함을 증명했다.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지만 반공주의와 싸웠고, 자유주의자가 아니었지만 자유를 실천하며 살았다. 여러 번 구속당하고 언론사와 대학에서 해직되었지만 언론인으로서 해야할 일을 회피하지 않았다.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대화]를 비롯해 좋은 책을 많이 펴냈다. 그러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기자 리영희, 언론인 리영희, 지식인 리영희" 로 굴곡 많았던 사회적 삶을 살았다.

나는 리영희 선생을 사상의 은사로 존경하지만, 역사와 사회, 인관과 정치에 대한 그의 모든 생각과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내가 그를 노년의 롤모델로 여기는 것은 그가 보여준 인간적 품격 때문이다. 리영희 선생은 어디에서도 대접 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을 아랫사람 대하듯 하는 것을 나는 보지 못했다. 모임에서는 윗자리에 앉는 것을 사양했다. 자기 주장을 하기 보다는 남의 말을 경청했다. 건강이 악화된 후에는 사회적, 정치적 발언을 절제했고 글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평화롭게 시간을 보냈다. 

리영희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두 해 전이다. 낙선했지만 17대 국회의원 임기가 아직 조금 남아 있었던 나는 "십자매" 의 부탁을 받고 강화도에 있는 국회의원 연수원 통나무집을 하나 빌렸다. "십자매"는 호주제 폐지 싸움에서 맹활약한 "무서운 여자들" 이다. 기자, 변호사, 한의사, 소설가 등 직업이 다양하다. 나는 사석에서 그들을 "마녀"라고 부른다. 십자매는 리영희 선생님 내외분을 공기 맑고 인적이 드문 그곳으로 모셨다. 노환으로 병원에 일시 입원했던 선생이 사모님을 태우고 손수 운전을 해서 오셨다. 한의사 이유명호를 비롯한 십자매들은 마치 칝어아버지나 되는 것처럼 여럿이서 둘러싸고 서서 발코니에 앉은 선생의 팔과 어깨를 주물렀다. 그 광경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나이를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살것인가, 유시민 중에서 -


  Comments,     Trackbac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