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캐나다 이민자 아줌마의 이민 육아 이야기
캐나다 현지 이민 법률 회사 3년 경력 아줌마의 캐나다 이민, 생활, 육아, 힐링 관련 정보 공유 블로그.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들 (40)
이태석 신부님의 고귀한 일생




최근 이태석 신부님의 제자 토마스 타반 아콧(33)씨(남수단출신)가 신부님과 같은 대학의 의사 과정을 마치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했습니다. 신문에서 그 기사를 접한 후 한동안 잊고 지냈던 이태석 신부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부산의 가난한 집안에서 10남매 중 9번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 부터 학업이 우수했을 뿐더러 음악에도 자질이 있었다고 합니다.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신부가 되고 싶은 꿈을 가졌고 2001년 사제 서품을 받고 바로 아프리카로 떠났습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란 성경 구절을 항상 가슴에 담고 남수단 어린이들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은 봉사를 했습니다. 신부님은 남수단의 지속적인 발전과 성장을 위해서, 늘 의료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밴드활동을 지원하고 하루에 3백명 가까이 되는 환자를 치료하며 자신의 몸은 챙기지 못하시고 결국 암에 걸려 48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오랜 내전과 지독한 가난으로 감정이 메말랐는지,남수단 사람들은 왠만한 일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태석 신부님(John Lee) 장례식에서는 마을 주민 대부분이 눈물을 흘리며 애도 했습니다. 


생전에 삶이 차별없이 낮은 곳에서 그들과 늘 동등하게 사셨기에 민병대나 적군들 조차도 신부님을 존경하고 지지했다고 합니다. 신부님의 이런 삶의 자취는 남수단 교과서에도 실리게 되었습니다. 남수단에서 외국인 최초로 훈장을 수여받고 교과서에 까지 실리면서 신부님의 삶이 세상에 더욱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울지마 톤즈 바로가기(한/영, Korean /English)

개인의 이익을 가장 중시하는 현대 사회의 상식에서 한참을 떨어져 있는 신부님의 일생을 보면서 다시 한번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Comments,     Trackbac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