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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 박열과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

최근 개봉된 영화 박열을 보면 박열의 일생 중 일본에서 겪었던 20년이 넘는 감옥생활의 계기가 된 사건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조선의 아나키스트, 무정부주의자 치열했던 그의 삶은 운명과 선택의 기로 속에서 결코 평범하지 못한 인생을 살게 했습니다. 

경북 문경에서 태어난 박열은 3.1 운동 참가를 계기로 경성보통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일본으로 건너갑니다. 도쿄에서 인력거꾼을 하며 고된 노동자의 삶을 살던 그에게 운명같이 나타난 여인은 바로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 였습니다.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이 쓴 "개새끼"라는 시에 감탄하여 그를 찾아가 동거를 제안합니다. 당시 박열은 반제국주의를 주창하며 친일파를 규탄하고 항일 투쟁을 이어나갔는데요. 불후한 어린 시절을 보낸 가네코는 박열과 계급적 동지로서 함께 항일 운동을 하며 계급적 동지로서의 삶을 함께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던 중 일본 관동 지방에서 대지진이 일어나게 되고, 일본 정부에 의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조선인이 불을 지르고 사회주의자들과 결탁하여 방화와 폭탄에 의한 테러, 강도 등을 획책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등의 유언비어(가짜뉴스)가 퍼트려집니다. 기존 일본의 경제불황과 지진으로 인해 사회 불만이 폭발한 일본인들의 분풀이 대상으로 조선인이 선정되어 무자비한 학살과 이를 방조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독립신문에 의하면 6천명이 넘는 조선인이 살해 당했고 살해 현장은 말로 설명하기 끔찍할 만큼 잔인한 내용 투성이 입니다. 조선인을 구분하기 위해 십오엔 오십센이라는 어려운 발음을 시켜 발음을 제대로 못하면 가차없이 살해했고, 사람들을 밧줄로 묶어 강물에 던지거나 도끼로 찍어 죽였고, 임산부의 배에서 태아를 꺼내 불에 집어 던지기도 했습니다. 죽지 않은 사람에게 산채로 기름을 부어 태워죽이기도 하고 경찰서 유치장에 쳐들어가 같혀 있던 조선인들을 무차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당시 일본 경찰과 군부는 자경단의 이런 행동을 묵과했으며 때로는 이러한 학살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극도로 혼란한 일본사회에서 차라리 감옥에 가는 것이 안전하겠다고 생각한 박열 선생은 순순히 일본 경찰에 체포됩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지진 및 조선인 불법 학살사태를 뒤집기 위한 이슈가 필요했고,박열의 폭탄 구입계획을 빌미로 이 내용을 황태자 암살사건으로 날조 과장하여 박열은 사형선고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박열의 행동은 일본열도를 큰 화제로 몰고 갑니다. 공판에 앞서 재판장에게 죄인취급하지 말 것과 동등한 좌석을 설치할 것, 조선 관복을 입을 것, 조선어 사용 등 4가지 조건을 요구합니다. 사형 판결이 난 후에도 선생은 “재판장, 수고했네. 내 육체야 자네들 마음대로 죽이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는가”라고 일갈하며, 불굴의 독립의지와 민족정신을 표출하였습니다. 

이후 가네코는 일본 감옥에서 자살한것으로 발표되지만 그 과정이나 결과가 의문 투성이였고, 박열은 일본이 패망한 후 출옥하여 김구 선생님과 함께 독립 투사들의 시신을 찾아 대한민국으로 보내는 등 민족 투사로서 삶을 살아다가다 6.25때 강제납북 됩니다. 북한에서도 소신있고 기개 있는 삶을 살았다고 알려지며(당시 독립투사들은 대부분 기개가 대단했다고 합니다.) 남과 북 모두에서 독립운동을 인정받아 훈장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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