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처원,이근안으로 이어지는 한국 대공경찰의 맥은 노덕술로 부터 시작됩니다. 조선 총독부의 기록에 의하면 노덕술은 뛰어난(?) 수사술로 일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일제 시대 내내 독립운동가들에게 혹독한 고문을 가했으며, 만약 반민특위가 정상적으로 운영됬다면 제일 먼저 사형이 집행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노덕술은 어떻게 반민특위에서 풀려날 수 있었을까요? 이는 이승만이 친일파들을 비호하고 등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승만이 귀국하였을 당시 우익세력은 김구선생님, 좌익세력은 여운형선생님쪽으로 세력이 규합되었기 때문에 이승만은 마땅한 정치적 지지 기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친일파들을 이용해 독립운동가나 민족세력들을 좌익세력으로 몰아 테러하고 살해하며 권력을 잡아갔던 것입니다. 여기서 노덕술은 이승만의 총애를 받고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반민특위에 잡히고도 아무 처벌없이 풀려나게 되는 것입니다.
노덕술의 고문기술은 유명한데 하도 잔혹하게 고문을 하여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고문을 받다가 죽거나 출감 후 그 휴유증으로 사망했습니다. 그가 행했던 고문은고춧물 먹이기, 전화기 고문으로 알려진 전기고문, 일명 비행기타기로 알려진 엄지손가락을 묶어 매달기,손톱 발톱 뽑기, 혀 뽑기, 칼로 찌르기, 못이 박힌 상자에 넣어 흔들기 등 매우 다양했습니다. 이런 노덕술의 고문 기술들이 후배에게 전수되어 일제스타일의 고문수사가 1980년대 말까지 대한민국 수사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노덕술과 같은 시기 착혈고문으로 유명한 하판락, 일본인들조차 한 수 배우자고 했던 김덕기등의 고문경찰들이 있었고 이 중 하판락은 2003년까지 생존했으나 끝까지 본인의 죄를 반성하거나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더욱 공론할 일은 이들 고문기술자들이 모두 국가에서 훈장, 표창을 받고 생애 내내 승승 장구 했다는 사실 입니다. 일제 시대에는 일본에서, 독재 시절에는 독재자에게서 국가를 위해 애국을 했다며 이들을 치켜세웠습니다.
이러한 자들이 처벌 받지 않고 소위 말하는 성공의 길을 걷다 보니 해방 후에도 대한민국의 정의는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유럽에서 나치에 동조하고 협조하였던 자들은 아직까지도 처벌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처벌받은 친일파가 단 한명도 없습니다. 이런 역사가 더이상 되풀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친일파, 반민족자들에 대한 처벌과 청산이 필요하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nWRzBIbS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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