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민주 혁명 4. 19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60년대 4. 19가 일어나게 된 배경은 크게 두가지가 있습니다.
-요즘은 기자들이 기레기라고 불리며 국민들에게 하대 받고 있지만 1950~60년대 기자들은 일종의 선비와 같이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올바른 소식을 전하는 분들이었습니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언론을 탄압하였지만, 기자정신은 끝까지 살아 대한민국의 현실을 알렸습니다.
-또한 북한과 대립해 있던 당시 서로 경쟁을 심하게 하면서 국민들 사이에 교육열이 불붙어, 많은 시민들의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4.19 혁명의 정의]
이승만 정권이 저지른 각종 독재와 부정에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사건.
사건의 발달은 3.15 부정선거와 후에 김주열 군의 시신이 떠오르며 4.19의 도화선이 됨.
이승만의 12년 장기 독재 정권을 끝내게 한 전 국민의 민주 항거 혁명,
[4.19 항쟁의 시간적 흐름 ]
2월 28일 대구 학생시위
민주당 장면 후보 유세일이 일요일이었는데, 정부는 학생들이 유세장에 가는 걸 방해하기 위해 일요일에도 강제 등교를 시킵니다. 이에 반발한 대구 일대 1,200명의 학생들이 대규모 가두시위를 벌이게 됩니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는 이 학생들의 공산당의 사주에 의해 시위를 하는 빨갱이로 몰아갔고 경찰을 동원해서 강제 해산 시켰습니다. (이놈의 빨갱이 장사는 지긋지긋 합니다.)
3월 15일 부정 선거 규탄 시위
3월 15일 이승만 정부의 부정선거는 타의 추종을 불가합니다. 미리 이승만, 이기붕에 기표가 된 표를 3~40% 투표함에 채워두는가 하면, 정치깡패를 동원해 야당 참관인을 쫒아내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도 안되는 조작으로 시작된 선거 결과는 당연히 이승만측의 대승으로 결론이 났지만 당시 투표자의 수보다 개표수가 더 많이 나오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부정선거에 폭발한 시민들은 투표 당일부터 광주를 비롯한 마산, 부산 등 전 지역에서 시위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경찰은 강제 진압을 하면서 발포까지 하게 됩니다. (이 일로 김주열 열사도 사망하게 됩니다.)
4월 11일 김주열 마산 의거
부산일보 허종기자에 의해 발견된 김주열 군의 시신은 왼쪽 눈에 최류탄이 박힌채로 마산항에 떠올랐습니다. 경찰은 이를 은폐하려고 온갖 수를 썼지만 당시 신문 기사에 나온 사진을 본 시민들의 분노는 폭발했습니다. 김주열군은 당시 전라도 남원에서 마산으로 유학온 입학 예정학생이었지만 학교에 가보지도 못하고 비참한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일로 어느정도 사그라들었던 국민들의 민주화의 열망은 전국적으로 재폭하게 됩니다.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 시위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독재를 규탄하며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은 정치 깡패를 동원해 진압을 했고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구타 당하여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진이 신문에 실리면서 전국민들은 분노하게 됩니다. 당시만 해도 대학생은 최고의 엘리트들로 국민들의 기대와 존경을 받는 존재였는데, 쓰레기 취급 당하던 정치깡패에서 폭행을 당했다니, 이 사건은 전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게 되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됩니다.
4월 19일 전국 규탄대회
4월 19일 전국적으로 벌어진 규탄 시위는 경찰에 의해 강력 진압이 되는데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발포를 했고 이로 21명이 사망하고 172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이승만이 있던 경무대에서의 시위대는 발포를 통해 104명이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4.19를 주도한 것은 학생들의 힘이었습니다. 서울 시내 소재 거의 모든 대학의 학생들이 교문을 박차고 뛰쳐나왔고 청년들의 의기는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낸 주요한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4월 25일 전국 교수 시위
그 당시의 분위기는 교수들이 시위에 참여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제자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리는 참혹한 사태에 대해 지식인으로서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낀 교수들이 결국에는 시위에 참석하게 됩니다.
4월 26일 이승만 하야
어린아이는 물론 이제는 계엄군까지 국민의 편에서서 함께 시위에 나서게 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결국 전 국민이 들고 일어난 이 사건을 통해 미국도 이승만에게 등을 돌리게 됩니다. 이승만은 80이 넘은 나이에도 끝까지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야욕을 보였지만 결국에는 물러나게 됩니다.
하지만 전 국민이 만들어낸 민주화의 열망은 박정희가 일으킨 5.16 군사정변에 의해 좌절됩니다. 다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무려 18년간 장기 독재를 하며 국민을 탄압하고 민주 열사들을 죽이며 정권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이어진 전두환 정권까지 해방 후 40년간을 독재 정권에 신음하던 우리 국민들은 6.10 항쟁으로 전두환 정권까지 몰아내는 기염을 토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 들어선 정권들에도 청산하지 못한 친일파, 그의 후손들, 군부 독재 부역 세력들과 같은 사람들이 권력의 중심에 있다보니 제대로 역사는 청산되지 못했습니다. 정부수립 70년이 지난 요즘 들어서야 역사 바로 세우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배웠던 한국의 근 현대사는 왜곡된 내용이 굉장히 많습니다. 권력자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들은 빼고 각색하여 잘못된 내용을 교육하고 세뇌하였기 때문에 지금 세대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이 현실 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 후손들에게는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쳐야 할 책임은 지금 우리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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