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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열등감의 근원 무의식 정화하기, 원하는 삶 창조하기. 행복 이란, 나를 사랑하는 방법

현대인들에게 중요한 키워드 자존감, 자존감은 삐뚤어진 방향으로 높아지게 되어 에고(자아)를 강하게 만듭니다. 강해진 에고는 오만, 교만, 자만, 우월감, 이기심, 허영심 등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는 자신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독이됩니다. 자존감을 높이고자 한다면 낮은 자존감에 대해 올바르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존감이 낮다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유를 떠올려 볼까요? 많은 사람들이 낮은 자존감을 논하는데 착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자존감이 낮은 이유를 외부에서 찾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외모가 부족하니까, 학력이 안되니까, 돈이 없으니까, 성격이 별로니까, 나이가 많으니까, 능력이 없으니까, 결혼을 못했으니까. 등등 대단한 착각입니다. 1차적인 착각 때문에 자존감을 키운답시고 외부에서 방법을 찾습니다. 외모를 멋지게 만들어야지. 성격을 바꿔야지. 학력을 높혀야지, 남들이 알아주는 직업을 가져야지, 돈을 많이 벌어야지, 명품을 사야지, 멋진 파트너를 만나야지. 그러면 남들이 인정해주고 자존감이 확~올라가겠지. 아닙니다.

여러분이 온갖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외부적인 요소를 레벨업 시킨다고 해도 열등한 위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 나의 외부적인 요소가 아무리 뛰어나져도 언제나 상대적으로 더 뛰어난 사람이 존재하기 마련이거든요. 내가 레벨 10자리일 땐 20자리의 위치에 가면 자존감이 높아질 것 같지만 막상 레벨 20에 와보니 세상에는 레벨 50, 100자리들이 넘쳐납니다. 여전히 나는 남들보다 뒤쳐지는 열등한 위치에 있게 됩니다.

이때 에고는 여전히 본인이 열등하다는 사실에 괴로워하게 되고 이 열등함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외부 에고를 더욱 강화하게 됩니다. 자기보다 낮은 레벨을 무시하고 혐오하게 되고 자기보다 높은 레벨을 칭찬하고 우러러보게 됩니다. 속은 열등하지만, 겉으로는 우울한 사람인 척을 하게 됩니다. 자존감은 외부적인 요인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외모 지식 스펙 직업 성격 돈 등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자존감은 내부 무의식과 가장 크게 관련이 있습니다.

현실에 남들보다 부족한 나, 열등한 나, 뒤떨어지는 나가 창조되어 있는 이유는 여러분의 무의식에 의미 결핍 프로그램이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의식이 인간 껍데기의 옷을 입고 세상에 태어날 때(투사) 전 삶 등을 통해 해결하지 못한 카르마 혹은 영혼이 체험하고자 하는 바(사랑)를 이루기 위해 이미 무의식에 결핍을 세팅하고 태어납니다. 내부 결핍을 외부로 투사하여 태어날 때부터 결핍을 가진 부모와 자식으로 태어납니다. 이렇게 에고는 영유아기 때 본인으로부터 창조된 결핍된 부모로부터 다시 결핍을 체험하기에 무의식에 결핍된 자아가 강하게 형성됩니다.

이 부모는 내부의 결핍을 아이 또는 배우자에게 투사하여, 결핍된 사람들을 현실에 창조하고, 그 사람들로부터 다시 결핍을 전달받게 됩니다. 아이 또는 가족으로부터 결핍을 체험하기에 아이를 키우는 것이 즐겁지 않습니다. 특히 아이가 감정이나 의견을 표현할 때 부모는 큰 결핍을 체험하게 되며 아이가 우는 경우에(감정표현) 그만좀 울어라, 너 때문에 힘들어, 짜증나 등의 마음을 내게 되고,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부모로부터 무시당하고 거부당하게 됩니다.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받아줄 수 없게 되는 이유는, 이 부모가 역시 어렸을 때 그의 부모로부터 감정을 거부당하고 무시당했기 때문입니다. 결핍이 있는 부모의 자식은 역시 결핍이 있는 부모가 되는 것(무의식의 대물림). 아이의 무의식에 무시당하고 외면당한 자아가 생기고 반면 관심받고 싶은 자아, 존중받고 싶은 자아의 욕심이 생기게 됩니다. 또한 부모(양육자)는 내부에 결핍을 가졌기에(결핍투사) 부모의 외부현실에는 당연히 부족한, 못마땅한 아이가 나타나게 됩니다.

 

아이가 순수하고 고유하게 자신이 가진 상태는 거부당하고, 어떤 기준에 의해 평가되기 때문에 자아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게 되고 열등한 자아만 크게 형성되어 자괴감을 갖게 됩니다. 이렇게 어렸을 때 형성된 결핍된 씨앗들은 그대로 땅속(무의식)에 남아있기 때문에 평생 지속적으로 외부 현실에 열등한나, 부족한 나를 창조하게 됩니다. 땅속(무의식)을 들여다 보지 않는 이상 씨앗(결핍)은 절대 안 없어집니다. 그 씨앗(결핍된 내부)은 계속 같은 열매(결핍된 외부 현실)를 맺게합니다. 이렇게 결핍된 자아를 가진 아이가 성인이 되어 부모가 되었을 때, 똑같이 현실에 결핍된 아이를 창조(내부 결핍 외부로 투사)하게 되고 자신의 아이에게 똑같이 결핍을 주게 됩니다. (무의식의 대물림)

자존감이 낮아지는 원인은 어렸을 대 부모와의 관계에서 무의식이 부족한 자아를 형성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왜 내 부모님은 나한테 결핍을 주셔서 하면서 부모님을 탓하시면 안됩니다. 이 결핍된 자아는 관심, 인정, 존중, 자격, 높은평가, 칭찬등을 필요로 하게 되는데, 필요한 상태=결핍된 상태와 같습니다. 내부의 결핍은 외부의 결핍을 창조할 뿐입니다. 또한 결핍된 자아는 본인이 부족한 사람이 되거나 인정받지 못하거나 무시당하거나 비난을 받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 합니다. 살면서 이 두려움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발산하기 때문에 아무리 외부 레벨을 올린다 한들 사람들에게 실망이 되고 무시당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비난받는 현실을 반복적으로 창조하여 체험하게 됩니다.

내부에 결핍과 열등감이 심한 사람일수록, 사람들에게 인정 칭찬 사랑을 받고 싶어 하며 비난을 극도로 두려워합니다. 사람들이나 자신을 어떤것에 비교평가하고 낮은 것에 적대감, 높은 것에 우호적이며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의 관념이 강하게 됩니다. 자존감을 키우고 싶다면 방법을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며 모든 무의식적 관념을 없애고 나를 바로 아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출신이나 환경과는 상관없이 원하는 삶을 창조할 힘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쉽게 원하는 것을 이루고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이루지 못합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도 만족스럽지 않은 삶을 사는 이유는? 내가 겪는 이현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에 대해 무지한 채 살아가면 내가 원하는 삶이란 평생 남의 이야기로만 남을 뿐입니다. 내 삶 속에 이뤄지는 모든 일들이 나로 인해 일어난 다는 것을 깨우쳐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피해자 행세를 합니다.

내가 이 몸뚱아리(에고)인줄 알고 살아가기에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믿습니다. 피해자 모드를 켜놓고 살아간다면 이것 때문에, 저것 때문에, 내 삶은 힘들다 며 남탓하고 원망하고 핑계를 대면 여러분이 원하는 삶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내 현실을 만드는게 아니라 내가 이 현실을 만듭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내가 내 삶을 이렇게 만들어 왔고, 나는 현재 매 순간 현실을 창조하며 살고 있고, 앞으로도 나의 창조에 따른 현실을 겪게 될 것입니다. 내가 겪는 이 현실 이 모든 것의 근원에는 내가 있습니다. 내가 눈을 뜨고 이 세상을 보고 있기에 이 세상이 존재합니다. 내가 내 내면에 무엇을 담고 있냐에 따라 그것이 그대로 현실에 구현됩니다. 나를 포함한 우주 만물은 매 순간 진동하고 있는 에너지죠. 내가 내는 생각 감정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냥 없는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내는 생각, 감정, , 행동 등은 에너지 형태로 남아 그대로 우주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 에너지가 그대로 반영되어 내가 그것을 물질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이 현실에 나타납니다.

 

똑 같은 일을 겪어도 어떤 사람은 행복해하고 어떤 사람은 불행해 합니다. 내 삶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이유는 내 내면의 두려움이 그대로 세상에 비춰 있기 때문에 두려움과 걱정이 가득한 현실을 체험 하는 것입니다. 내 삶이 즐겁고 풍요로운 이유는 나에게 이미 물질적인 부가 주어져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내 내면의 사랑이 세상에 그대로 비춰있기 때문에 넉넉하고 풍요로운 현실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특히 내 마음이 집중하는 것일수록 에너지는 더 강하게 작용해 더 쉽게 현실로 경험하게 됩니다. 또한 비슷한 주파수의 에너지끼리 강하게 연결되어 내가 어떤 것에 대해 생각을 자주 할수록 그런 현실을 더 자주, 빨리 마주하게 됩니다. 삶이 잘 안 풀린다면 내가 애초에 무엇을 심었는지 알아차립시다. 돈에 대해 즐거워하는 마음을 가집시다. 모든 현실에 대해 긍정적으로 행복한 에너지를 가집시다. 여러분이 원하는대로 삶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그것에 대해 부족함을 느끼는 마음으로부터 현실이 창조되기 때문입니다.

풍요로운 마음은 풍요로운 현실을 창조합니다. 내가 그것에 대해 아무런 결핍없이 풍요로운 마음을 갖고 있다면 나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그것이 실제로 풍요로워지는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이미 다 가진듯이 생각, 감정, 행동하면 되겠죠. 돈을 많이 갖고 싶다면 이미 돈을 풍족하게 가진 마음상태와 그것에 대해 기쁨과 사랑등의 긍정적인 감정을 갖습니다. 그러면 나의 잠재의식이 결핍에서 풍족함으로 바뀌게 되고, 행동을 실행에 옮겼을 때에 실제로 그것이 풍족해지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인간의 잠재의식은 상상과 실제를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상을 통해 내가 이미 그것을 풍요롭게 가진 상태를 지속적으로 잠재의식에 주입합니다. 그러면 실제로 그것이 풍요로워지는 현실을 체험하게 됩니다.

나의 삶은 지금 여기에 펼쳐져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욕망은 나를 지금이 아닌 미래를 기대하게 합니다. 삶을 상상하는데로만 쫓게 되면 나는 결과에 연연하게 됩니다. 결과에 눈이 멀어 지금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 감사와 사랑을 느낒 못한채 살아갑니다. 욕망이 더 이상 욕망이 되지 않을 때 나는 자유로워 집니다. 결과가 콩이 되든 팥이되든 상관하지 않을 때, 나는 자유로워집니다. 내가 지금 자유로워질 수 있을 때, 내가 지금 주어진 것에 감사할 수 있을 때, 나는 진정한 행복이 있는 삶을 창조합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그 힘은 외부로부터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 여기 내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불안감이 찾아올 때 마다 그 불안감을 미래로 포장하지 마시고, 지금 현재로 돌아와 현존하시길 바랍니다. 삶은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행복이란 것이 어떤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얻게 되는 결과가 되는 한, 실제적인 행복에는 영영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식이 라면 원하는 것을 얻고 얻지 못함에 따라 행복을 느꼈다, 불행을 느꼈다 하겠죠. 지금까지 수십 평생을 살면서 당연하게도 어떤 것이 이루어져야만 행복할 것이라고 여겨왔다면, 행복감은 잠시였을 뿐, 걱정과 불안은 되풀이 되고 있음을 알아차리셨을 것입니다.

내 무의식속에 있는 행복에 대한 믿음, 관념을 완전히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얻고자 하는 언젠가는 있을 행복이란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지금 여기에 있는데 원하고 있는 행복이란 것은 미래에 가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찾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여기서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여기에 없으니 당연히 미래에도 없습니다.

 

단순히 기분이 좋은상태, 나쁜상태를 경험하는 것은 행복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외부의 일로부터 반응하고 파도처럼 요동칩니다. 그 마음 너머 그 뒷편에는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참나가 있습니다. 몸과 마음 너머에 언제나 존재하고 있는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오롯이 현재에 머무를 때 몸과 마음 너머의 나로서의 존재 합니다. 내가 현재에 머무르지 못하고 미래와 과거에 대한 생각에 빠져있을 때 감정의 파도를 경험할 뿐 입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것에 집중하고 관찰할 수 있을 때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순간 그 찰나에 행복이 있습니다. 외부에서 행복을 찾기 바빠서 이미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행복을 간과합니다.

이 평범하고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도 내가 내부로 들어간다면 지금 여기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삶을 살면서 마음이 즐겁기도 슬프기도 기분이 좋기도 나쁘기도 하는 그 마음을 그대로 둡니다. 감정을 느끼되 관찰자 자리에서 나의 마음 상태를 관찰합니다. 그럼 그 관찰하는 순간은 그저 현재에 머무르게 됩니다. 지금 깨어서 지금 주어진 것에 대하여 그저 초연하게 바라봅니다. 바라보고 있는 그 자리에서 나는 행복합니다. 외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는 지금 여기에 머무를 수 있을 때 완전합니다. 지금 깨어 있게 되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게 됩니다. 판단과 평가 생각 감정을 끊임없이 하는 내가 있을 때, 관찰자 모드를 켜고 아기가 세상을 바라보듯 존재합니다. 그 순간에 고요와 평화가 있고, 그 자리에 자유와 행복이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에 대해 기분 좋은 감정을 가지는 것일까? 사실 감정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제 삼자의 입장에서 나를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는 것. 내가 어떠하든 나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내가 뭘하든 어떻게 생겼든, 어떤 조건과 환경을 가졌든 모든 것을 초워하여 괜찮은 것. 나에 대해 생각, 감정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나에 대해서 열등감 우월감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나에 대해 잘잘못을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습니다.

관찰자 모드를 켜고 무의식 속의 자아를 의식의 표면위로 꺼내어 관찰합니다. 어린시절 나와 부모와의 경험을 관찰합니다. 무의식을 정화하려는 노력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원망의 대상을 사랑의 대상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 대상을 온전하게 사랑해야 합니다. 원망의 대상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감사하기. 나는 나를 깨우치고 살아가야만, 나의 무의식을 깨닫고 정화해야만 이 카르마가 반복되지 않습니다. 상처받은 나를 치유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은 나의 은인입니다. 감사합니다. 울고 있던 자아는 웃음을 찾게되고 나는 치유되고 사랑이 생겨납니다. 사랑을 주는 현실 받는 현실을 창조하게 됩니다. 이 훈련은 꾸준히 반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유튜브 나탐 채널 내용 중에서.

https://www.youtube.com/@Nat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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