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캐나다 이민자 아줌마의 이민 육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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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서양 사람들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단연코 인색한 말이 있다면 아마도 고맙다 는 말과 미안하다 는 말일 것이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도 걸핏하면 Thank you, Sorry를 되뇌는 외국인들에 비해 우리는 여간해서는 이런 말을 잘 하지 않는 듯하다. 

오랜 유학 생활 덕분에 나는 그나마 "고맙다"는 말은 꽤 자주 하는 편이다. 조교나 학생들이 심부름을 해주거나 시중을 들어주면 곧잘 "고마워" 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러나 이에 비해 "미안해"라는 말은 여간 어렵지 않다. 분명히 내게 잘못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미안해"라는 말을 하려면 목소리가 기어들거나 가능하면 슬쩍 얼버무려 버린다. 마음속으로 미안한 감정을 느끼지 않아서가 결코 아니다. 너무나 미안하다고 생각할 때도 그렇다. 

게다가 가끔식은 그런 말을 할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는 적도 있다. 때문에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오해는 아니더라도 다른 이들이게 거만하게 보이거나 못된 사람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나의 성격적 결함을 머릿속으로는 다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미안해"라는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어쨌거나 그 말이 목에 딱 걸려 안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이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 심사숙고해 보기까지 한다. 왜 "미안해요"라는 짧은 말 한마디가 그토록 어려운 것인가?

그것은 나의 삶의 방식과 연결된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내게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본능적으로 체득한 내 삶의 법칙은 슬프게도 삶은 투쟁이고 투쟁은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승부 근성이 투철한 내게 "미안해" 라는 말은 결국 내가 졌다는 뜻이고,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경쟁 심리가 그 말을 거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자존심 탓일 수도 있다. 미안하다 고 말한다는 것은 나의 결함과 실수를 인정한다는 것인데, 그것이 나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아니 좀더 마음속 깊이 파고들어가 보면 그것은 아마도 내가 어쩌면 잘못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왜 애당초 남에게 사과할 일을 했으며 그것도 예견 못했다는 것은 지독한 오판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니면 내가 남보다 못났다는 데 대한 열등 의식이거나 자격지심일 수도 있다. 만일 내가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이 있다면 내가 잘못했고 그 사실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 무어 그리 어렵겠는가.


-중략-

하지만 오늘 나는 미안합니다라는 말, 아니 그 말의 위력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봐야만 했다. 

저녁 때 아버지가 오피스텔에 있는 나를 데리러 차를 갖고 오셨다. 아버지와 내가 공동으로 집필하고 있는 고등학교 영어 교과서를 위해 출판사에서 얻어준 오피스텔인데, 나는 주말에 그곳에서 일하곤 한다.

아버지와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게 나갔는데, 건물 뒤편에 있는 주차장 경비원이 아버지에게 현관 가까이에 차를 댔다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계속 허리를 굽히면서 사과하고 계셨다. 

"미안합니다. 잠깐만 있을 겁니다. 제가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곧 나올 겁니다"

그러나 아버지 연세쯤 되어 보이는 경비원은 심하게 아버지를 힐책하였다.

"아 글쎄 기다리려면 저기 주차장 안에 차를 대고 기다리란 말이에요! 왜 하필이면 현관 앞에 차를 대냐구요!"

"미안합니다. 조금만"

아버지는 계속 미안합니다를 반복하고 계셨다. 물론 차를 현관 근처에 대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지만, 경비원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자 너무 자존심 상하고 화가 나서 나는 경비원을 한 번 흘끗 쳐다보고는 차에 올라탔다.

경비원은 잠시 나와 목발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아버지에게 깊이 머리를 숙이더니,

"아이고 정말 죄송합니다. 왜 이분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해 주시지 그랬어요. 만약 그랬다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텐데요. 이 분이라면 몸이 불편하시니까 여기 대셔야지요. 이분을 자주 뵈요"

말을 하는 와중에도 그는 중간중간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여러번 되풀이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괜찮습니다. 제가 잘못한건데요 죄송합니다. 라고 사과했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인사하고 헤어졌다. 차가 떠날 때 경비원은 손까지 흔들며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결말인가. 서로 얼굴 붉히고 마음 상하고 헤어졌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기꺼이 미안합니다 하고 사과를 했기 때문에 결과는 해피엔딩이었다. 

아마도 나라면 아버지처럼 사과하는 대신 "금방 간다는데 왜 그러세요? 그렇게 융통성이 없으세요? 하면서 얼굴을 찌푸렸을 것이고 경비원도 사과하는 대신 "그래도 원칙은 원칙이지 아무리 몸이 불편한 사람 기다린다고 차를 현관앞에 세우다니" 생각하면서 뽀로통한 얼굴로 돌아섰을 것이다. 

그러나 나보다 나이도 많고 인생 경험도 풍부한 두 사람은 해피 엔딩을 만드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잘못을 기꺼이 인정하는 태도와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려는 마음 그리고 미안합니다라는 말의 효력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생에 단한번, 장영희 에세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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