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나에게 주는 선물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밝고도 뜨거운 햇볕, 몸에서 흐르는 땀, 자주 내리는 비, 크고 오래된 나무들이 주는 그늘과 시원한 바람 한줄기 그리고 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정원을 거닐다가 꽃이 진 자리마다 더 무성해진 초록의 잎사귀들을 유심히 보며 나의 시 한 편을 같이 걷던 동로에게 읊어 주었다.
"지난 봄부터 초여름에 이르기까지 늘상 꽃들에게만 눈길을 주고 꽃예찬만 한 것이 왠지 마음에 걸리네요!" 라는 나의 말에 친구는 "글쎄 말이에요. 잎사귀들을 좀 더 섬세하게 관찰하면 그런 실수는 안했을텐데..... 어떤 수녀는 글쎄 살구 열매가 매실인 줄 알고 모두 따다가 술을 담갔다잖아. 파랗게 익어가는 모습이 조금 비슷하긴 해요. 그쵸? 하길래 우리는 함께 유쾌하게 웃었다.
꽃이 지고 나면
비로소 잎사귀가 보인다.
잎 가장자리 모양도
잎맥의 모양도
꽃보다 아름다운
시가 되어 살아온다.
둥글게 길쭉하게
뾰족하게 넓적하게
내가 사귄 사람들의
서로 다른 얼굴이
나무 위에서 웃고 있다.
마주나기잎 어긋나기잎
돌려나기잎 무리지어나기잎
내가 사랑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운명이
삶의 나무 위에 무성하다
-이해인[잎사귀 명상] 전문-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더 잘보이듯이 누군가 내 곁을 떠나고 나면 그 사람의 빈자리가 더 크게 다가온다. 평소에 별로 친하지 않던 사람이라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크게 보인다.
우리가 한세상을 살면서 수없이 경험하는 만남과 이별을 잘 관리하는 지혜만 있다면 삶이 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왠만한 일은 사랑으로 참아 넘기고,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마침내는 이해와 용서로 받아 안는 노력을 멈추지 않으면서 말이다. 서로의 다름을 비방하고 불평하기보다는 "이렇게 다를 수도 있음이 놀랍고 신기하게" 하고 오히려 감사하고 감탄하면서 말이다.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우리가 서로의 다름을 못 받아들이는데서 오는 경우가 많다. 서로의 다름을 머리로는 축복으로 생각해야지 결심하지만 실제의 행동으로는 정말 피하고 싶은 짐이네 하는 경우가 더 많기에 갈등도 그만큼 심화되는 것이리라.
마음을 더 맑게 더 맑게 샘물처럼!
웃음을 밝게 더 밝게 햇님처럼!
눈길을 순하게 더 순하게 호수처럼!
사랑을 넓게 더 넓게 바다처럼!
기도를 깊게 더 깊게 산처럼!
말씨를 곱게 더 곱게 꽃처럼!
한꺼번에 실천하기엔 주문이 너무 많은 것 같아 부담되지만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어느 날 나도 멋진 잎사귀를 흔드는 한 그루 나무가 되어 있으리라. 이렇게 기대해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서 새소리가 들려오는 행복한 여름이다.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이해인 수녀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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